The Perfect Thing
Five years ago, Apple engineers used foam core and old fishing weights to craft a model of a new MP3 player. The age of the iPod was about to begin.
By Steven Levy
2001년 10월 중순이었다. 필자는 스티브 잡스의 안무가 절묘한 쇼에 초대를 받았다. 이 쇼는 10월 23일,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본사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초대에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다름 아닌 초대문구였다. "힌트: 맥이 아닙니다." 보통 때라면 매혹적이기만 한 잡스 이야기의 최신작을 기대하며 비행기에 올랐을 터이다. 애플로의 복귀는 그 자체로서도 훌륭한 이야기 거리이지만, 잡스 이야기의 진수는 그가 지내온 경력이 1960년대식 가치(록큰롤에서부터 소박한 불교까지 그 모든 가치)를 거침 없이, 또한 전례 없이 기업세계로 드러낸다는 데에 있다. 잡스는 훌륭한 세일즈맨이다. 나스닥에서 거래중인 두 회사(애플과 픽사)의 CEO로서, 또한 최첨단 제품 개발과 제조에 있어서 그는 달인이 된 사나이다. 하지만 필자는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이사회의실에 들어오는 그를 본 적도 있다. 그는 엄격한 선승에 믹 재거의 쾌활함,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쇼맨쉽까지 두루 갖추었다. 그러한 그가 이번 이벤트에 나온다는 초대장이었다. 역사에서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면, 그가 선보이는 물건은 정말 기사를 씀직한 물건일 것이다.
필자는 그 쇼에 가지 못하였다. 당시 필자는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다. 9/11이 터진지 겨우 몇 달이 못 된 때였다. 뉴욕의 다른 사람들처럼 필자도 우울한 상태였다.
그래도 필자는 뉴스를 주의깊게 훑어 보았다. 스티브 잡스는 자기 일을 마술처럼 감추지만, 이번 건은 완전히 감추지 않았다. 게다가 "맥이 아닌" 무언가는 디지탈 뮤직플레이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정도로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MP3 플레이어라고도 알려진 디지탈 뮤직플레이어는 이미 수 년 전부터 나와 있었다. 그래서 신기한 제품 정도에 불과하였다. 보통 당시의 뮤직플레이어는 알 수 없는 인터페이스에, 게임 탈락자에게 주어지는 싸구려 플라스틱 장난감의 인상을 풍겼다.
그래도 100% 부정적이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필자도 이 새로운 장난감에 대해 쓸 마음을 먹고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애플과 상의하였다. 애플이 보낸 소포가 사무실에 도착한 날 오후였다. 애플은 칼럼니스트들에게 보낼 새 MP3 플레이어를 대서양쪽으로도 분주히 보내고 있었다. 따라서 소포를 던지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 이 패키지는 튀는 상자에, Moterey Pop을 연주하다 흥분에 빠진 지미 핸드릭스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 안에 아이포드가 들어있었고, 아이포드는 아름다웠다.
이 새로운 장난감을 갖고 놀기 위해 사무실을 떠날 참에, 필자는 잡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미리 전화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한 숨을 내쉬면서, 쿠퍼티노 시간으로 이제 오후 1시 반이며 하루 내내 아이포드에 대해 떠들어댔다 말했다. 인터뷰가 진행되자, 잡스는 역시나 잡스식으로 변모했다. 그는 언제나 전달할 메세지를 갖고 있었고, 여기에 열정을 덧붙였다.
필자는 그에게 아이포드가 얼마나 팔리리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의 답변이다. "전 예측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는 분명 예측을 하였다. 그의 말이다. "아이포드. 정말 역사적인 제품이 되 겁니다."
그날 밤, 마이크로소프트가 뉴욕의 저널리스트들을 초청하여 다음 날 선보일 윈도우즈 XP 행사를 조촐하게 치루었었다. 빌 게이츠와도 대화를 많이 나눠봤기에, 필자는 빌 게이츠가 이런 말을 해도 놀라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 PR팀은 필자를 게이츠 옆에 앉혔었다. 게이츠의 말이다. "정말 최고로 어리석은 물건입니다!"
그 때 필자는 아이포드를 갖고 왔었다. 식사가 끝나자 다른 손님들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필자는 아이포드를 꺼내서 게이츠에게 보여주었다. 필자가 물어보았다. 아직 이거 안 보셨나요?
게이츠는 마치 SF 영화에서 우주인이 신기한 물건을 보고 텔레파씨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두뇌로 생각해 보는 표정을 지었다. 게이츠의 손가락은 자동차경주 속도만큼 빨라졌고, 모든 버튼을 누르는 듯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눈만은 화면에 바로 꽂혀 있었다. 거인의 탄식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그는 이 기기의 모든 정보를 빨아들여서 필자에게 건네 주었다. 그의 말이다.
"훌륭한 제품 같네요."
그러고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뭔가 계산이 안 맞는 것이었다. 그가 물었다.
"매킨토시 전용인가요?"
그 때는 그랬다.
퍼델(Anthony Michael Fadell)은 2001년 1월 23일 당시, 콜로라도 Vail의 한 스키장에 있었다. 32세의 하드웨어 엔지니어이자 디트로이트 출신인 퍼델은 흔치 않은 휴가를 즐기는 중이었다. 당시 그는 작은 디지탈-뮤직 회사를 시작했었고, 자기 회사를 통제한다는 사실에 뿌듯해 했었다.
그런데 애플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 인생 내내 퍼델은 애플을 우상시하고 있었다. 12살일 때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애플 IIe를 물려받고 캐디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합쳐서 프로그래머를 시작했었다. 그 이후 미시간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그는 회사 세 개를 시작했었다. 대학 이후 그의 첫 번째 직장은 1992년 General Magic이라 불린 막 태어난 회사였다. 이곳에서 그는 매킨토시를 만들어낸 전설적인 인물 두 명과 나란히 일하였다. 다름 아닌, 앤디 허츠펠드(Andy Hertzfeld)와 빌 앳킨슨(Bill Atkinson)이다. 래리버드와 닥터 제이와 함께 농구 경기를 하는 기분과 마찬가지랄 수 있었다.
불행히도 핸드헬드 컴퓨터인 General Magic 제품은 실패작이었다. 그 이후, 퍼델은 필립스 전자에서 좀 기묘한 세월을 보냈다. 너무나 안정적인 직장으로 정평난 이 네덜란드계 회사는 여전히 20대였던 퍼델에게 새로이 모바일컴퓨팅 그룹을 이끌 기회를 주었다. 당시 퍼델은 필립스 그룹 전체에서 제일 젊은 관리자였다. 설사 퍼델의 성격이 안정적이고,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 할 지라도 그런 승진은 좀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퍼델은 그렇지도 않았다. 사무실에 염색해서 나타나곤 했던 그는 회의할 때는 누구나 공격하곤 했었다. Fast Company의 한 기자가 그에게 컴퓨터가 만들어지기 전에 어디서 자라났는지를 묻자, 그는 "감옥"이라 답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델은 필립스의 윈도우즈 기반 PDA 개발을 이끌었고, 이 제품은 50만 대 정도 팔렸다. 덕분에 그는 하드드라이브-기반의 쥬크박스에 수 천 개의 노래를 담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런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대해 RealNetworks와 얘기를 나누었고, 결국 리얼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아직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에서 제품을 갖고 도전해 볼 기회가 더 낫다고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시애틀로 이주할지 말지를 회사와 싸운 통에, 그는 6 주일 만에 리얼을 그만두고 말았다.
이제 퍼델은 스스로의 회사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Fuse Networks다. 그런데 이곳에서 애플의 하드웨어 수장인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이 어떤 한 프로젝트에 대해 의논해 보자며 퍼델을 불렀다. 퍼델은 루비와 만나기로 결심한다. 당연히 루비는 프로젝트를 낱낱이 퍼델에게 말해줄 수가 없었다. 애플의 유별난 비밀엄수주의 때문이었다. 퍼델이 아는 것이라고는 애플이 자기에게 8 주일짜리 계약을 하나 맡길 것이며, 자기가 이 프로젝트에 적합하다는 정도 뿐이었다. 하겠소 외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서야, 그는 자기 임무가 애플의 기존 iTunes 애플리케이션에서 작동할 MP3 플레이어를 만드는 것이며, 멋진 제품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는 조그마한 컴퓨터를 만들어내야 했다. MP3 플레이어가 원래 조그마한 컴퓨터이며, 디지탈 노래 파일을 저장하고 데이터베이스화시킨 다음, 여기에 인터페이스를 시각적으로 입힌다. 그리고는 고속의 연산을 거쳐서 지미 헨드릭스와 요요마를 CD에서 듣는 것처럼 들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 프로젝트가 애플, 그리고 세상, 특히 음반 사업을 바꾸리라 언급하지는 않았다. 누구도 그리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플이 퍼델을 원했던 이유는 핸드헬드에 대한 그의 경험때문이었다. 애플은 그동안 새로운 MP3 플레이어의 모든 요소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중 특히 도시바에서 만드는 1.8 인치 하드드라이브가 눈에 띄였다. 크기가 적은데도 5 기가 바이트의 데이터를 넣는 이 하드드라이브는 천 곡의 노래에 충분했다.
당시 이러한 부품가는 완전 농담 수준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무어의 법칙이 작용되었다. 이 웃길정도로 비싼 하드드라이브는 마치 1984년 오리지날 매킨토시를 둘러싼 상황과 비슷했다. 이 매킨토시에도 하드드라이브가 절실했지만, 너무나 고가였던 탓에, 하드드라이브를 포함시킬 경우 매킨토시의 값은 5000 달러는 될 터였다. 거의 일 년 후에 써드파티 주변기기로 하드 드라이브가 나오기는 했지만, 매킨토시의 절반 크기에 가격은 2000 달러를 호가하였다. 그리고 용량은 10 메가바이트였다. 당시로서 10 메가바이트면 거의 무한한 용량으로 보였다. 하! 1985년에 나온 이 하드드라이브로도 닐 영의 "Down by River"를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 도시바에서 5-기가 바이트 드라이브가 작게 나왔고, 이 드라이브를 집어 넣을 수 있다. 그것도 3일은 족히 들을 음악으로 채울 수 있다. 그런데 그 가격이 수 천 까지는 아니더라도 수 백 달러를 호가하였다.
퍼델은 파트너 지정을 받았다. 가끔은 혼란스런 쿠퍼티노 문화에 그를 연결시켜줄 고리가 된 것이다. 당시 6년째 애플에서 하드웨어 마케팅 관리자를 하고 있던 Stan Ng가 퍼델과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바로 핵심으로 들어갔다. Ng의 말이다. "주머니 안이야말로 이 제품의 만트라입니다. 바로 그 크기에 들어갈 만 해야 하기 때문이죠. 작은 제품이 이미 나와 있긴 하지만 스무 곡이나 서른 곡 정도 뿐이며, 배터리 수명도 안 길어요. 게다가 하드드라이브가 있는 제품들은 일 파운드가 넘어서 주머니에는 안 어울립니다. 두 세계에서 최고만 합치고 싶었죠."
애플은 완전한 비밀엄수를 요구했기 때문에 퍼델과 Ng는 실제로 자기들이 뭘 하는지 심지어 애플 내 동료들에게도 말을 못하였다. 결국 퍼델은 애플 MP3 플레이어 모양에 대한 모델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스티로폼을 잘라서 같이 붙여서 만든 모델이었다. 담배갑 크기에 날카로운 화면이 상단에 있고, 네비게이션을 위한 버튼이 아래에 있었다. 정말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모델이 너무 가벼웠다. 퍼델은 다시 차고로 가서 수 년 전에 쓰던 오래된 낚시상자를 꺼냈다. 할아버지랑 같이 쓰던 상자였다. 그 안에는 아직도 낚시추가 있었다. 낚시추를 망치로 납작하게 만든 다음, 그는 이 낚시추를 갖고 모델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최종 제품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 모델을 루빈스타인에게 보여주었고, 루비는 정말 기뻐하였다.
퍼델의 계약은 4월 초에 종료였으며, 결과물을 경영팀에게 보여줘야 할 회의 날짜가 잡혔다. 그는 숙제를 해냈으며, 프로젝트의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스티브 잡스 앞에서 정치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그는 세 가지 다른 버전을 갖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그 중 두 개는 희생양으로 만든 것이었으며, 제외되리라 여겼다. 마지막 모델을 위해 일부러 만든 희생양이었다. 마지막 모델이야말로 완벽하다 생각했다. 회의 전에 퍼델과 루빈스타인은 모델을 커다란 나무 상자 아래에 숨겨 놓았다. 잡스는 4층의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된 인물들은 모두 모여 있었다. 루빈스타인과 아이튠즈의 황제, 제프 로빈(Jeff Robbin), 애플의 세계마케팅부 부사장 필 실러(Phil Schiller), 그리고 당연히 잡스도 있었는데, 계약서에 잡스의 이름은 올라 있었지만 퍼델은 그 때가 잡스와의 첫 대면이었다. 회의는 Ng의 슬라이드로 시작되었다. 시장의 잠재성과 경쟁, 현재 제품들이 얼마나 열악한지, 애플이 혁신을 거둘 여지가 있는지에 대한 슬라이드였다. 언제나처럼 잡스는 계속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퍼델의 차례가 왔다. 그는 도시바의 1.8인치 하드드라이브와 작은 화면, 여러가지 배터리 후보들, 샘플용 마더보드 등 부품을 탁자 위에 늘여 놓고는, 핸드헬드의 경제성과, 메모리, 하드드라이브의 가격 동향, 최신 배터리 기술과 쓸 만한 디스플레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간급을 선택하게 하는 기술이었다. 퍼델은 첫 번째 모델을 보여주었다. 이 모델은 하드드라이브나 플래시 메모리카드를 모두 허용할 만한 커다란 슬롯을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어색했고, 반응도 안 좋았다. 잡스는 너무 복잡하다며 한 마디로 해치웠다. 그러고나서 두 번째 모델이 나왔다. 다이나믹 RAM을 갖춘 디바이스로서 배터리가 죽으면 노래도 사라지기에, 다시 로드를 해야 했다. 잡스는 절대로 안 팔린다며 투덜거렸다. 마침내, 퍼델은 오늘날 아이포드라 불리우는 아이포드스러운 모델을 들고나서서 잡스에게 건네주었다.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뭔가를 말해주는 침묵이었다. 보다 다듬어진 모델이 상자 안에서 등장하였고, 이 모델은 소프트웨어를 조정하는 버튼을 전면에 두고 있었으며, 무게도 알맞았다. 이번에야말로 잡스의 기쁨은 분명했다.
Just right.
또다른 깜짝쇼가 있었다. 실러가 물었다. "제 물건도 가져올까요?" 그는 방을 나서더니 재생용 기기를 여러 개 갖고 들어왔다. 커다란 것도 있었고, 작은 것도 있었다.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점만은 공통이었다. 모두가 전면에 휠 장치를 갖고 있었다. 실러의 설명이 잇따랐다. 휠이라면 한 손가락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휠을 돌리면 쉽게 노래나 아티스트, 앨범을 찾을 수 있다. 뭔가를 고르려면, 휠 중앙의 버튼을 누르면 된다. 더해서, 손가락을 돌리다보면 휠 속도도 올라가기에 긴 목록도 순간적으로 찾을 수 있다.
(후에 실러가 필자에게 설명해주었는데, 휠 아이디어는 잡스와 루빈스타인의 초기 회의때 이미 결정됐다고 한다. "다른 MP3 플레이어는 모두 조그마한 플러스, 마이너스 버튼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천 곡을 담아야 해요. 천 번 동안 플러스 버튼을 누를 수는 없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클릭으로 안되면, 돌리면 되잖을까 하고 말이죠.")
잡스는 퍼델에게 실러의 스크롤 휠을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퍼델은 가능하다 답하였다.
이제 프로젝트의 본격 발동이었다.
공식적인 코드네임은 P-68이었지만, 비공식적으로 애플 사람들은 덜시머(Dulcimer)라 불렀다.
아이포드의 아버지는 한 둘이 아니다. 개발은 동시다각적으로 일어났다. 이제 스탭진에 낀 퍼델은 실제 제작을 맡았다. 인터페이스와 소프트웨어 팀은 로빈이 맡았으며, 디자인은 조나단 아이브가 맡았다. 루빈스타인은 동 프로젝트를 관장했고, 잡스 자신은 구경만 하였다. 특정 임무에 대해서는 외부 인사를 초빙하기도 하였다. 퍼델은 특히 San Jose의 회사, PortalPlayer와 전직 애플 직원이 만든 Pixo와 접촉하였다. 물론 이들 모두 잡스와의 회의 시간을 가졌고, 잡스는 기기를 들고 무엇이 마음에 들고, 무엇이 마음에 안든다고 말하였으며, 사람들에게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도대체 그걸로 뭘 하려고?"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이 제품의 작명자는 다름 아닌 잡스였다. 한 팀원의 말이다. "한 번은 잡스가 와서 '아이포드'라 말하고는 떠났죠. 우리 모두 서로를 쳐다봤어요. 그래. 아이포드야. 마음에 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지은 이름이지?'" (훌륭한 질문이다. 애플 내부인들에게 답변을 하라 재촉하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지만, 필자는 마침내 잡스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아는 한, 완전히 자기가 만들어내기만 하진 않았다 답하였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 마케팅 팀, 그리고 TBWAChiatDay와 함께 논의를 길게 가졌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광고사에서 좋아하더군."이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아이포드라는 이름이 그 자체가 갖는 근사함보다는, 작명에 있어서 잡스의 참여때문에 아이포드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싶다.)
가끔 잡스는 직원들을 술렁이게 만들기도 하였다. 디자이너 중 하나가, 이 디바이스에 전원 버튼만은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잡스의 답변이 너무 간단하게시리, "안돼"였다. 정말 그랬다. 오리지날 매킨토시의 키보드에 커서 키를 없애야 한다는 잡스의 유명한 고집이 다시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잡스의 관점에 따르면, 필요한 버튼은 '앞으로'와 '뒤로', 그리고 '멈춤' 뿐이었다. 그것도 휠을 둘러싼 형식이어야 했다. (하지만 디자인팀이 엄청난 노력을 펼친 끝에 잡스에게 네 번째 버튼, "메뉴"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여러가지 선택 목록을 나오게 하는 버튼이다.)
8월달에 팀은 드디어 노래를 재생시킬 수 있는 실제 모델을 만들어냈다. 밤까지 야근을 불사한 이들은 소니워크맨으로 노래를 듣곤 했다. 그런데 첫 번째로 나온 노래는 영국의 디바, 소피 엘리스-벡스터가 부른 Spiller의 "Groovejet"였다.
복제방지는 아이튠즈나 아이포드의 일부가 아니었으며, 이미 자유로이 배포되는 MP3 포맷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잡스는 불법복제에 무척 신경썼기 때문에, 온건한 방법을 취하기로 하였다. 개발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아이포드 디자이너들은 매킨토시에서 이 아이포드로 노래를 옮길 수 있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반대도 할 수 있게 해 줄 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양방향 싱크를 허용하면, 아이포드를 갖고 노래를 전부 불법복제하는 일이 무척 쉬워지리라 확신한 잡스는 한 방향 싱크만 허용시키도록 명령내렸다. 마찬가지로 잡스는 아이포드에 "음악을 훔치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꼭 넣으라고도 명령내렸다. 영어 말고 다른 말로도 집어 넣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자, 잡스는 "여러 개 언어로 써 넣으라"고 지시하였다.
구름이 걷히고, 놀라운 제품이 나타나자, 이제 모두들 기뻐하였다. 잡스의 말씀이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자 모두가 다 잘 되었습니다. 휠이 있었고, 메뉴를 레이아웃한 다음, 이것 저것을 논의하였죠. 메뉴 정하기에 일 주일 정도 걸렸습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한 번 보시면 한 눈에 어떻게 사용할지 알 수 있을 거에요. 휠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사용자 인터페이스도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 아실 겁니다. 천 곡을 부드럽게 고를 수 있어요. 주머니 안의 노래 천 곡. 그것도 손쉽게 조작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기쁘지 아니한가?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한 번 누르고 나면, '맙소사. 제대로 멋져버렸네.' 하실 겁니다."
아이포드의 사용감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인터페이스는 아이포드 디자이너들마저 사로잡았다. Stan Ng는 프로토타입을 집으로 가져왔었다. 그 때의 감정을 보면 정말 그러하다. "제 매킨토시에 CD 8~90개 분량의 곡이 있었는데요. 이 곡들을 빠른 파이어와이어로 전송시키고 나서 제 마음대로 음악을 트니, 정말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술같았죠.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였어요."
그러한 비공식적 실험이 애플이 수행하는 시장조사에 제일 가깝다. 하지만 모든 일에 확신을 기하는 테스트도 많다. 특히나 실제 물리적인 피해가 생겼을 경우가 그러하다. 제일 취약한 부분은 하드드라이브였다. 한 엔지니어의 설명이다. "주머니 속에 들어갈 만한 물건에 하드 드라이브를 넣은 사례가 없어요. 그래서 하드드라이브가 견고한지 아닌지 알기 위해 수 백 개의 디스크드라이브 떨어뜨리기를 했어요." 이 낙하실험을 규칙적으로 하기 위해 로봇팔까지 동원됐다. 디지탈 충돌 실험용 더미(dummy)처럼, 고도에 따라 하드드라이브를 떨어뜨려도 살아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애플은 아이포드가 30 피트 정도의 높이를 견뎌낼 수 있으리라 판단내렸다.
선을 보이기 직전, 아이포드의 첫 번째 제품은 필자처럼 운 좋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2001년 11월, 실제로 판매에 들어가기 전에 수 천 명이 아이포드를 받았다.
다시 전으로 돌아가서 보면, 잡스는 사못 철학적으로 아이포드를 소개했었다. "애플의 존재이유를 만들어낸 제품이 하나라도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애플의 훌륭한 디자인에 전설적인 애플식의 편리함을 기반으로, 애플의 믿을 수 없으리만치 놀라운 기술이 들어가 있어요. 디자인과 편리함, 기술, 이 세 가지가 이 물건 안에 들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모두 이 제품 안에 녹아 있죠. 애플이 지구에 왜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좋은 사례로 아이포드를 보여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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